화료! 일본 리치마작 <제1장 리치마작의 탄생 ②>


일본표준마작의 외연 확대


레인보우 회의를 통해 숙원이었던 일본 전국의 통일안으로 확정된 일본표준마작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1930년대에 들어서 더욱 고조됐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마작의 보급 속도가 과거보다 더 빨라지는 선순환의 원동력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1931년 9월 18일 발발한 만주사변을 계기로 일본이 전면적인 전시 체제로 돌입하면서 1932년부터 마작은 제국주의 일본 정부의 금기 대상으로 지정돼 상당 기간 침체기에 빠지게 됩니다. 급기야 1940년에는 경찰의 대대적인 단속으로 표면적으로는 일본에서 마작장이 단 한 곳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1927년 개업한 남산장(南山荘)에서 사용했던 마작 테이블. 이후 다른 마작장의 표본이 됨.(일본 마작박물관 소장)


이와 같은 악조건에서도 1930년대 일본표준마작은 일부 오류가 수정되고 새로운 규칙들이 하나둘 접목되면서 내용이 더 풍부해졌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방총자(放銃者) 1인 책임지불’과 ‘후리텐(振り聴, フリテン, 진리청)’입니다. ‘방총자(放銃者) 1인 책임지불’은 쉽게 설명해 우리나라 화투 놀이의 한 종류인 고스톱에서의 ‘독박’과 같은 개념입니다.
마작에서 이기는 형식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본인이 역(役, 야쿠)을 만들 수 있는 패를 직접 가져와서 이기는 ‘쯔모호(自摸和, 쯔모아가리, 쯔모)’, 다른 하나는 상대방 중 한 명이 버린 패를 가져와서 이기는 ‘론호(榮和, 론아가리, 론)’입니다. 론호는 위에서 언급한 방총자의 ‘방총(放銃)’과 같은 말입니다. 이 방총이라는 용어는 문법적으로 능동과 피동 다 사용할 수 있는 한자어인데 일본 마작에서는 예외적으로 피동태로만 사용됩니다.
우리나라 말로 쯔모호는 “오르다”, “났다”, “올라” 등으로 표현하고 론호는 “쏘였다”, “총 맞았다”, “쏘아” 등으로 호칭합니다. 마작에서 승리하는 것을 ‘화료(和了, Winning)’라고 하는데 일본어로는 호라(ホーラ) 또는 아가리(あがり)라고 합니다.
중국 마작은 이 ‘쯔모허(自摸和)’나 ‘룽허(榮和)’ 모두 승자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이 함께 점수를 지불합니다. 쯔모허는 3분의 1씩 똑같은 점수를 승자에게 지불하는 반면 룽허는 승리패를 헌납한 사람이 점수의 2분의 1, 나머지 두 사람이 4분의 1씩(둘이 합치면 2분의 1) 승자에게 지불합니다.
그러나 리치마작은 론호(榮和)의 경우 승리패를 헌납한 사람이 혼자서 모든 점수를 지불해야 합니다. 부주의에 대한 벌금을 책임지고 혼자 낸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것이 방총자 1인 책임지불입니다. 방총자는 “승리패를 헌납한 사람 또는 쏘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쯔모호(自摸和)의 경우 선(오야)의 승리 시 중국 마작처럼 3분의 1씩 똑같은 점수를 오야에게 지불하면 됩니다.(이 부분은 오야가 아닌 자의 승리 시 달라집니다.)
‘후리텐(振り聴, フリテン)’은 중국 마작에는 없는 일본표준마작의 독특한 개념입니다.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후리텐은 일본 마작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인데 “상대방이 버린 패로 승리할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고의든 아니든 승리패를 이미 버린 것에 대한 벌칙인데 심한 경우 “스스로 승리패를 직접 가져와야만 이길 수 있다.”는 규정입니다.
중국 마작은 이 규칙이 없기 때문에 바닥(河라고 함)의 어느 공간에나 패를 버리면 되지만 일본표준마작은 어느 패를 누가 언제 버렸는지 항상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버리는 패를 자신의 손패 앞에 가지런하게 순서대로 놓아야 합니다. 버리는 패들은 공간을 고려해 한 줄에 6개씩 배열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일본표준마작의 정체성을 둘러싼 대립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면서 일본의 공고했던 마작 금지령은 자연스럽게 해제됐습니다. 음지 대신 공개석상에서 눈치를 보지 않고 가족과 지인을 중심으로 삼삼오오 모여 다시 마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1946년 2월 도쿄를 시작으로 마작 클럽의 영업이 일본 전역에서 재개되고 이듬해인 1947년 일본마작연맹이 재건돼 활동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패전 직후 어느 순간부터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규칙들을 도입해 마작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고 그 수가 점점 늘어갔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주도한 것은 중국 만주에서 마작을 배운 관동군 출신 일본 퇴역 군인들과 미국 본토에서 마작을 배우고 일본으로 파견된 미국 현역 군인들(미국 주둔군)과 외교관들이었습니다. 문명의 충돌처럼 동서양 마작 규칙의 대립이 일본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새로운 규칙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중국 마작에서 첫 바퀴(순서, 턴, 회전), 즉 첫 번째 쯔모(自摸)에서만 성립 가능한 역(役, 야쿠)인 ‘초순 입직(初巡 立直)’을 어느 때나 조건이 맞으면 선언할 수 있도록 허용(정확히는 변형)한 규정입니다. 이 새로운 규칙이자 역(役, 야쿠)의 이름은 게임 도중에 선언할 수 있다는 의미로 초기에는 ‘도중 입직(途中 立直)’이라고 칭해졌습니다.
그러나 이 용어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직(立直)의 일본 발음인 ‘리치(リーチ, Riichi, Rizhi)’로 짧게 호칭되기 시작됐습니다. 리치는 마작을 배우기 시작한 사람들과 마작판으로 복귀한 사람들 사이에서 단순한 유행을 넘어선 ‘신드롬’을 일으켰고 1946년 무렵부터 어느덧 새로운 마작의 대세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리치의 뒤를 이어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 규정이 또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도라(ドラ)’입니다. 리치라는 개념은 일본의 고유한 규칙이라고까지 주장할 수 없지만 도라는 일본에서 개발한 독창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도라에 대한 규칙이 미국 본토 또는 외국의 미군 주둔지역에서 1940년대 초부터 이미 적용되고 있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도라는 승리했을 때 갖고 있기만 하면 그 패의 수량만큼 추가로 받을 수 있는 일종의 보너스 점수입니다. 도라를 우연 또는 행운의 영역으로 가볍게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은 고도의 계산과 전략이 필요한, 그야말로 전체 승부를 좌우하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도라라는 용어는 삼원패, 즉 백발중(白發中) 패를 서양에서 용(龍, Dragon)으로 호칭하는 것에서 착안해 용을 일본식으로 표기한 ‘도라곤(ドラゴン)’에서 따온 것입니다.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일단은 우리나라 화투에서 광(光)과 비슷한, 상대적으로 가치 있는 패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이와 같은 리치와 도라의 도입 여부를 두고 1940년대 후반부터 속칭 ‘리치 반대파’와 ‘리치 추진파’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시작됐습니다. 일본 마작계를 쥐락펴락하는 원로들과 일본마작연맹 등 마작계의 주류는 대부분 리치 등 새로운 규정의 도입에 반대하거나 도입에 신중한 입장이었습니다.
이 리치 반대파 중에서 가장 강경한 입장을 취한 곳은 일본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일본마작연맹이었습니다. 전쟁의 여파로 사실상 폐업 상태로 있다 1947년 활동을 재개한 일본마작연맹은 “리치와 도라 도입에 반대할 목적으로 조직을 재건했다.”는 비아냥까지 들을 정도로 결사적으로 리치와 도라의 채택을 반대했습니다.
당시 일본마작연맹이 일본 마작 규칙의 금과옥조로 삼은 것은 ‘이십이마작(二十二麻雀)’입니다. 이것은 마작 1국의 승리에 필요한 최소 부(符)가 22부이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입니다. ‘지나마작(支那麻雀)’이라고도 불리는 이십이마작은 중국어 22를 일본어로 발음해 ‘아르시알 또는 아루샤루(アルシャル)’ 마작이라고도 합니다.
이십이마작은 중국 마작의 원형을 구현한 일본표준마작을 기본으로 삼아 ‘방총자(放銃者) 1인 책임지불’과 ‘후리텐’ 등 최소한의 일본식 규정을 도입한 마작 규칙입니다. 우연으로 만들어지는 역(야쿠)이 없고 리치와 도라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일본표준마작과 곧 탄생 예정인 리치마작 사이 중간 정도에 위치한 마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마작연맹을 비롯한 리치 반대파들은 이미 익숙해진 후리텐 등의 규정은 어쩔 수 없지만 여기에 더해 리치, 도라 등 새로운 파격을 허용하는 것은 일본표준마작의 존재를 기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리치를 선언한 후 화료(和了, ホーラ, あがり) 하지 못하면 패를 무조건 버려야 하는 이 강제 규칙이 마작의 기술적인 부분에서 퇴보를 가져올 것으로 우려했습니다. 심지어 패를 넘기기만 하면 우연적인 요소로 승부가 갈리는 근대 초기의 원시적인 게임으로 회귀한 것이라고 강변했습니다.
그러나 일제 패전 이후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신여성을 비롯한 소설가, 기자, 학자, 마작 산업 관계자 등 신진 세력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리치가 도입되면 마작의 재미가 배가 되고 기술이 더욱 고도화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운동 경기처럼 체계적인 시합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논쟁은 1950년대에 접어들어서도 결론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동호회나 마작 클럽 등에서 리치와 도라가 없는 과거의 일본표준마작, 이십이마작 등으로 마작을 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대신 “리치!”를 외치는 사람들의 숫자가 어느새 대다수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리치와 도라에 대한 규칙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마작 현장의 혼란은 날이 갈수록 가중됐습니다.


‘도중 리치’, ‘도라’ 등을 도입한 ‘리치마작’ 탄생


리치와 도라를 둘러싼 마작계의 대립이 점점 감정적으로 흘러가자 언론계가 앞장서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언론 대부분은 양자의 눈치를 살피느라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중립적인 태도를 취할 뿐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평소 마작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았던 한 신문사가 총대를 메고 나섰습니다.
1952년 호치신문(報知新聞, 현 스포츠호치)은 ‘리치 추진파’를 대표하는 마작 이론가인 아마노 다이조(天野大三)에게 당시 최대의 핫이슈인 ‘리치 분쟁’에 대한 타개책 마련을 긴급하게 요청했습니다. 당시 아마노 다이조는 리치 반대파의 본산인 일본마작연맹의 공인 6단이자 상임이사였기 때문에 양쪽의 입장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아마노 다이조는 아사히신문에 <마작의 제일보(麻雀の第一歩)>, <표준규정 마작투패법(標準規程 麻雀闘牌法)>, 산음일일신문(山陰日日新聞)에 <마작 철학> 등의 마작 이론을 연재했던 전직 기자 겸 학자였습니다. 그는 미군의 ‘도쿄 대공습’ 때 다른 것은 그냥 놔두고 철학책과 마작 이론서만 챙겨 피난한 것으로도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한편 리치를 선언하면서 패를 버릴 때, 그 패를 옆으로 눕혀 놓는 규정도 아마노 다이조의 제안이 채택된 결과였습니다.
호치신문의 청탁을 받은 아마노 다이조는 그의 평소의 지론과 리치 추진파들의 합리적인 이론을 참고해 리치와 도라 등이 포함된 새로운 마작 규칙을 집대성했습니다. 그는 이를 1952년 11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호치신문에 6회에 걸쳐 게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리치마작의 원형이자 최초의 성문 규칙인 <1953년도 리치마작 표준규정(一九五三年度 リーチ麻雀 標準規程)>입니다. 이를 간단히 ‘호치룰(報知ルール)’이라고도 합니다. <1953년도 리치마작 표준규정>은 이듬해인 1953년 3월 단행본으로 출판됐습니다.

호치신문 120년사 연표에 실린 ‘호치룰’ 관련 기록.


아마노 다이조의 호치룰이 발표되자 이에 발끈한 일본마작연맹은 곧바로 그를 제명했습니다. 그 직후 일본마작연맹의 결정에 반발한 아마노 다이조는 1952년 12월 도쿄에서 ‘일본패기원(日本牌棋院)’을 설립해 <리치마작 표준규정>의 보급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1953년 벽두부터 일본마작연맹과 일본패기원의 마작 통일안을 둘러싼 건곤일척의 일대 결전이 시작됐습니다. ‘이십이마작’과 ‘리치마작’ 중 승자는 누가 될지 일본 내 범 마작인들의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그러나 이 승부는 의외로 아주 싱겁게 결론이 났습니다. 구시대를 대표하는 이십이마작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리치마작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도도한 흐름 앞에서 초반에 맥없이 무너진 것입니다. 호치룰이 언론을 통해 세간에 알려지면서 대부분의 마작인들이 이 새로운 규칙을 앞다투어 빠르게 채택하면서 일본의 마작 통일안으로 확고부동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로써 일본에서 리치마작의 시대가 찬란하게 열렸습니다.
일본마작연맹의 이십이마작은 이처럼 1950년대 중반에 사실상 종말을 고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명맥이 완전히 끊어지진 않고 일본마작연맹의 노력으로 그 원형이 계속 보존됐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일본마작연맹은 이십이마작의 규칙으로 대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일본마작연맹과 일본패기원 사이의 오랜 불화는 한참 뒤인 2016년 일본마작연맹이 그들의 제2의 규칙으로 리치마작을 승인하면서 마침내 종식됐습니다.
한편 이십이마작 이외에 리치마작의 아성에 도전했던 규칙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순마작(純麻雀, Pure Mahjong)’입니다. 유명한 『마작개사(麻雀概史)』의 저자인 아사미 료(浅見了)가 1940년대에 창안한 순마작은 세계의 마작규정 중에서 우연과 운적인 요소를 극단적으로 배제한 투명한 규칙의 마작입니다.
순마작의 가장 큰 특징은 리치는 허용하되 도라와 책임지불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밖에도 ‘왕패(王牌, 사용하지 않는 14개의 패)’, ‘캉(槓, 같은 패 4개 소유 또는 4개를 만드는 일련의 행동) 및 캉 기반의 역’, ‘연장(連荘, 선의 계속)’ 등 마작의 일반적인 규정이 없는 색다른 마작입니다.
이십이마작이 1950년대 중반부터 사실상 일반인들이 사용하지 않는 규칙인 반면 순마작은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상당한 수의 동호인들이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애용하고 즐기는 규칙입니다. 사실상 일본에서 리치마작 다음으로 제2의 인구를 가진 마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50년대 중반부터 리치마작은 일본 마작의 명실상부한 단일안이자 통일안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하지만 “리치마작이 곧 일본 대중마작”이라는 등식이 성립된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마작의 거인’으로 대접받기 시작한 아마노 다이조는 자신의 역작 <1953년도 리치마작 표준규정(호치룰)>이 결코 리치마작의 ‘완전판’이라고 속단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노 다이조는 <호치룰> 발표 이후에도 마작의 본질과 리치마작의 방법론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 1978년까지 <리치마작 표준규정>의 개정판을 여러 차례 더 발표했습니다. 그 중에서 1957년 발표한 통칭 <도쿄룰(東京ルール>의 ‘항상 1판 묶음 규정(オール 一飜縛り 規程)’, 1967년 발표한 통칭 <현대룰(現代ルール)>의 ‘장조로(場ゾロ, 바조로)’, ‘오카(オカ)’, ‘뒷도라(裏ドラ, 우라도라)’ 등의 새 규정은 얼마 후 리치마작의 표준규정으로 정식으로 채택됐습니다.
참고로 ‘항상 1판 묶음 규정(オール一飜縛り規程)’은 우리 말로 통일된 명칭이 없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하면 일본어 ‘オール’는 ‘영어로 all’입니다. ‘一飜’의 번(飜)은 마작에서 역의 난이도에 따른 단위를 가리키는데 일어로 ‘1한’, 우리나라 말로는 ‘1판’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박리(縛り)’는 묶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オール 一飜縛り’는 “화료(승리)하기 위해서는 항시 1판의 역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장조로(場ゾロ)’는 승자의 점수 계산 시 2판을 더해 주는 것이고, ‘오카(オカ)’는 종료 시 처음에 받은 점수와 1등과의 점수 차이를 말합니다. ‘뒷도라(裏ドラ)’는 리치 선언 시 또다시 받을 수 있는 도라입니다.
참고로 도라에는 ‘적도라(赤ドラ, 아카도라)’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은 각 4개로 구성된 5만, 5통, 5삭패 중에서 하나의 패를 구분하기 위해 특별히 붉은색으로 칠한 것입니다. 마작 세트에 따라 5통이 하나 더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적도라는 승리 시 도라처럼 가지고 있기만 하면 개당 1판(한)씩의 점수를 더 얻을 수 있는 역의 한 종류입니다. 그러나 적도라 규칙은 리치마작에서는 정식 규칙이 아닌 ‘로컬룰’의 역으로 치부하기 때문에 프로 시합 등 정식 대회에서는 거의 채택하지 않습니다.
적도라는 1964년 도쿄올림픽이 개최되기 전에 오사카 마작용품조합이 올림픽을 기념해 세계적인 게임회사 닌텐도에 의뢰해 제작한 것이 그 기원입니다. 처음에는 올림픽 오륜기를 상징해 5통만 하나 적도라로 만들려고 했다가 너무 튀는 것 같아 3개로, 다시 4개로 확대해 제작했다고 합니다. 적도라를 대국 시 4개 사용할 경우 5통을 특별히 2개 사용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리치마작은 아마노 다이조가 발표한 1957년의 <도쿄룰>과 1967년의 <현대룰>에 의해 사실상 완성이 됐습니다. 최초의 마작 통일안이었던 일본표준마작 시대를 거쳐 격렬한 논쟁과 치밀한 연구 끝에 리치마작으로 매뉴얼화되고 정형화되어 일본 문화를 대표하는 하나의 현상으로까지 발전했습니다.
리치마작 규칙의 최종판은 1996년 호치신문사가 발간한 『평성판 마작 신호치룰(平成版 麻雀 新報知ルール)』입니다. 1982년 작고한 호치룰의 창시자 아마노 다이조를 대신해 ‘평성판 마작 신호치룰 제정위원회(平成版 麻雀 新報知ルール 制定委員會)’가 원고를 집필했습니다.
제정위원들은 당시 마작계에서 평판이 자자한 일본프로마작연맹 회장, 프로마작 기사, 일본장기연맹 회장, 마작 평론가, 문인, 배우, 교수 등 총 14명이었습니다. 이 중에서 일본건강마작협회(日本健康麻雀協会) 대표 이데 요스케(井出洋介)가 책임 감수를 맡았습니다.

1996년에 발표된 리치마작 규칙의 최종판 ‘新호치룰’.


리치마작은 특유의 치밀함과 합리성으로 일찍이 서양에 진출해 도박이라는 일부의 편견을 깨고 확률과 통계에 기반한 정식 게임의 영역으로 마작의 위치를 격상시켰습니다. 나아가 예측 가능성 및 공정성을 토대로 시간제 및 리그전 등을 도입해 마작의 스포츠화를 선도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규정으로 스스로 우뚝 섰습니다.
향후 국표마작을 비롯해 상해 클래식마작 및 홍콩 올드마작 등 원조국인 중국 각지역의 마작과 리치마작이 마작의 주도권을 두고 세계를 무대로 펼칠 본격적인 대결을 기대합니다. 아울러 한국 마작의 특별한 선전을 격하게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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