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마작 #1 (2부)


상해마작 제1강 <원조 마작에서 클래식 마장(麻將)으로> 2부


전 세계 마작의 원형, 상해마작

20세기가 개막되면서 마작은 미국과 유럽으로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1910년 즈음 중국에서는 상해마작, 광동마작에 이어 또 다른 규칙이 적용된 홍콩마작과 북경마작이 이미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20세기 시작과 함께 중국 내 마작의 대중화 및 세계화가 동시에 진행된 것은 매우 이채로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홍콩마작과 북경마작은 광동마작처럼 상해마작의 변형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상해마작처럼 지식인 주도로 치밀하게 규칙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해당 지역에서 마작을 즐기는 상류층 집단의 기호에 따라 규칙이 몇 가지로 변형되면서 보급됐습니다. 따라서 북경마작과 홍콩마작으로 분류되지만 발생 단계부터 그 하위 버전에 속하는 변형판들이 다수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그 변형의 정도는 상위 버전의 범주를 넘어설 정도로 그렇게 크지는 않았습니다.
이 4가지 버전(version)의 마작 중에서 홍콩마작을 ‘중국 올드 스타일(Chinese Old Style)’ 마작이라고 하고, 북경마작을 ‘중국 뉴 스타일(Chinese New Style)’ 마작이라고 합니다. 광동마작과 홍콩마작은 점수의 계산 및 지불 방식에서, 북경마작은 최소 두 자릿수 이상의 새로운 조합(구성) 개발 및 무소불위의 조커 패 도입이라는 측면에서 상해마작과 근본적으로 구별이 됩니다. 이 외에 중국 5대 마작에 속하는 사천마작은 자패를 사용하지 않고 수패들만 사용하기 때문에 상해마작을 포함한 4대 버전과 확실하게 구분됩니다.
여담이지만 2024년 7월 19일 JTBC에서 방영한, ‘무한도전’으로 유명한 김태호 PD가 연출한 ‘My name is 가브리엘’ 5편에서 배우 염혜란 씨가 배운 마작이 바로 사천마작입니다. 하고 많은 마작 중에 하필이면 왜 사천마작일까요? 그에 대한 답은 간단합니다. 염혜란 씨가 등장하는 식당이 위치한 곳이 중경(重慶, 충칭, chóngqìng)이고 중경은 1927년 시로 승격되기 전까지 사천성에 속한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1920년대 들어서면서 마작은 조셉 밥콕(Joseph P. Babcock)이라는 한 사업가에 의해 미국에 대대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사실상 미국이 영국과 호주를 제외한 서양 마작의 본산으로 그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미국인들에게 생소한 마작을 효과적으로 보급하기 위해 상해마작의 일부 규칙을 초보자용으로 쉽게 만든 매뉴얼을 제작해 마작에 대한 미국 내 특허권을 획득했습니다. 아울러 ‘Mah-Jongg’이라는 명칭으로 마작의 고유명사에 대한 독점권 역시 확보했습니다. 이 매뉴얼이 어떤 내용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실제 상해마작과는 어느 정도 괴리가 있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매뉴얼이 첨부된 마작 세트는 당시 매우 비싼 가격이었지만 중국 문화에 대한 미국인들의 호기심에 편승해 비공식적이지만 수십만 개 이상이 팔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마작의 대히트는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해 엉터리 매뉴얼이 첨부된 수많은 해적판 마작 세트가 등장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것이 바로 1920년대로 추정되는 적지 않은 수의 영문 마작 매뉴얼이 존재하지만 어떤 것이 조셉 밥콕이 제작한 매뉴얼인지 알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 대부분은 실제 마작과는 거리가 먼 엉터리 매뉴얼입니다.
다만 1924년에 발간된 <American Code of Laws for Mah Jong>은 상해마작을 영어로 완벽하게 반영한 매뉴얼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발간 직후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상해마작의 유일한 정통 매뉴얼로 인정받은 이 책은 역으로 중국 마작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으며 이후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 마작의 교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특히 유럽의 경우 <American Code of Laws for Mah Jong>을 토대로 고전마작에서 현대마작으로 체계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미국과는 다르게 엉터리 규칙이나 이론이 유입된 흔적이 없어 초기 상해마작이 비교적 완벽하게 이식된 것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자신들의 마작을 ‘Chinese Classical Mahjong’이라고 호칭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유럽 마작의 주류는 사실상 상해마작과 같은 뿌리의 마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해마작을 이해하기 위한 두 원천

상해마작에 대한 가장 공신력 있는 기록은 1924년 미국에서 발간된 <American Code of Laws for Mah Jong>입니다. 이 책 외에 미국에서 팔린 마작 세트에 첨부된 매뉴얼 중에 <Standard Rules for the Chinese Domino Game of Mah Jong>이라는 소책자가 있는데 이 자료 역시 과거의 상해마작을 매우 충실히 반영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 소책자는 중국 광동지역의 한 문구점에서 1960년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매뉴얼은 “For the style known as ‘Classic’ or ‘Shanghai(클래식 혹은 상해 스타일로 알려진 마작)”라는 부제가 달려 <Standard Rules for the Chinese Domino Game of Mah Jong>의 해설판으로 다시 정식으로 출판됐습니다.
본 강의의 내용은 우리나라의 3작마작과 일본의 리치마작에 대한 오랜 경험 및 중국과 서구의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작성됐는데 그중에서 위의 두 매뉴얼이 그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매뉴얼들이 아주 친절한 수준은 아니고 부분적으로 합리적이지 못한 부분도 있어 그 내용의 100%를 반영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그런 점들은 현재 중국의 관습적인 예를 참고했습니다.


이에 대한 유일한 예외가 영국 마작입니다. 영국은 아편전쟁 이후 홍콩을 비롯한 광동지역과 역사적으로 매우 특수한 관계였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마작을 도입하기 시작한 18세기 후반부터 광동마작과 홍콩마작이 마작의 대세로 자리 잡았고 현재도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1929년 ‘대공황’의 여파로 잠시 주춤하던 미국 마작은 1935년 ‘The National Mah Jongg League, Inc.(약칭 NMJL) 설립을 계기로 대전환을 하게 됩니다. NMJL은 클래식 마작을 계승하는 대신 조커 패를 도입하고 플레잉 카드처럼 몇 개의 패를 교환하는 새로운 룰을 전격적으로 도입해 마작의 원형과 멀어지면서 독자적인 미국 스타일의 마작을 탄생시켰습니다.
이런 미국 스타일의 마작은 곧바로 유럽으로 흘러가 또 하나의 새로운 마작 문화를 형성했습니다. 그러나 유럽에서 클래식 마작의 위치를 위협할 정도로 그 파급력이 크지는 않았습니다.
1935년 이후 미국 마작은 그 아류를 포함한 클래식 마작과 NMJL 스타일의 마작 두 종류가 마작 문화를 선도하는 시대로 새롭게 개편됐습니다. NMJL 스타일의 마작 외에도 미국 해군 장교 부인들이 만든 ‘Wright-Patterson’ 규칙과 유태계 미국인들이 만든 규칙 등 일부 계층에서 인기 있는 다른 규칙들도 존재했습니다.
아시아의 경우 1920년 중국 내 마작 보급이 완료되기 전부터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마작이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보급 초기부터 아시아 국가들 역시 미국과 유럽처럼 상해마작과 홍콩마작에 대한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들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고 나라마다 특별한 규칙들이 일정 부분 추가되고 변형되면서 저마다 독특한 마작 문화를 형성했습니다.
아시아 국가들 중에는 화교의 숫자가 많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대만, 필리핀 등의 마작 열기가 전래된 초기부터 매우 뜨거웠고 현재도 그러한 분위기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특히 대만은 14개의 패를 조합해야 한다는 마작의 헌법 제1장 제1항에 해당하는 불변의 법칙을 버리고 과감하게 3개의 패를 추가해 17개의 패를 완성해야 하는 그들만의 마작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이 같은 17패 마작 역시 마작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외연이 확대됐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마작의 모든 길은 상해마작으로 통한다

마작 종주국인 중국의 아성에 유일하게 도전장을 낸 것이 일본에서 탄생한 리치마작입니다. 리치마작은 중국 마작에서는 주류가 아닌 변방의 개념인 입직(立直, lìzhí)의 개념을 재해석해 이와 아주 비슷한 발음의 ‘리치(リーチ)’로 명명하고 이를 중심 축으로 삼아 체계적으로 제반 규칙을 확립했습니다. 아울러 중국 마작에서는 볼 수 없는 보너스 성격의 패인 ‘도라(ドラ)’를 도입해 대량 점수가 가능하도록 새판을 짰습니다.
리치마작은 1953년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야구에 버금가는 일약 최고의 국민적인 보드게임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중국처럼 대중화가 진행되는 초반에 이미 바둑, 장기, 체스, 플레잉 카드 등의 인기를 가볍게 제쳤습니다.
리치마작은 ‘순마작(純麻雀)’, ‘이십이(22) 마작’ 등 그때까지 제각각이었던 일본 ‘로컬(지방)’ 마작의 규칙을 처음으로 통일한 일본 표준마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과거 중일전쟁 시대에 내렸던 마작에 대한 각종 규제를 철회하고 사실상 장려하면서 리치마작은 195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을 대표하는 오락으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러한 리치마작의 유행과 인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1960년대 들어서 도쿄에만 마작 전용 공간인 ‘마작장’이 수천 개를 넘을 정도였고 마작 동호인의 숫자가 전국적으로 수백만 명을 상회했습니다. 마작이 사교의 중심 영역으로까지 진출하고 마작을 잘해야 회사에서 승진한다는 말까지 생길 정도였습니다. 일본에서 프로 마작 선수가 등장하고 TV에서 마작 대회를 하루종일 중계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로와 아마를 망라하는 각종 선수권대회는 물론 우리나라의 야구나 축구처럼 고등학교 대항전도 공식적으로 개최됐습니다.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일본마작협회와 정부는 1960년대 이후 의욕적으로 리치마작을 전 세계에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마치 마작의 원조가 자신들인 것처럼 과장하고 시치미를 떼기도 했는데, 한참 후의 일이지만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리치마작 등재를 시도할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김치를 자신들의 유산으로 신청했던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그 후에 중국도 김치가 자신들의 것이라고 우기는 촌극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마작의 종주국인 중국의 입장에서는 반가우면서도 매우 뼈아픈 대목이지만 리치마작은 대부분의 서양 국가에서 사그라져 가던 마작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촉매 역할을 했습니다. 리치마작은 중국 마작이 미국과 유럽에 최초에 소개된 당시의 관심과 호기심을 능가하는 공전의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아시아를 제외하고 미국과 유럽 등 마작을 하는 대부분 국가에서 단기간에 리치마작이 주류마작으로 등극을 했습니다. 일본의 입장에서 더욱 고무적인 것은 상대적으로 젊은 계층의 리치마작에 대한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는 짐작할 수 있듯이 일본의 치밀한 전략과 과감한 투자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리치마작의 규칙으로 전 세계에서 개최된 마작대회는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도 애니메이션을 앞세워 간접적인 지원과 홍보를 아끼지 않았으며 그 결과 우리나라 마작 인구의 절대 다수가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마작이 아닌 리치마작의 동호인들로 추산될 정도입니다. 중국식 마작을 즐기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족 교포들 정도에 불과합니다.
미국의 경우 1980년대 이후 사무라이 영화, 스시, 애니메이션, 가전제품 등의 인기에 힘입어 리치마작 인구가 사실상 미국 스타일의 마작 인구를 추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런 리치마작의 기세는 필연적으로 미국 내 전통 클래식 중국 마작의 퇴보를 가져왔습니다.
비슷한 시기 클래식 마작의 위상이 절대적인 유럽의 경우에도 리치마작의 공세는 대단했습니다. 비교적 단시간에 중국 전통마작을 위협할 정도로 리치마작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이러한 현상은 계속돼 유럽 전체적으로 봤을 때 클래식 마작과 리치마작의 인구가 엇비슷한 수치인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다만 중국 입장에서 다행스러운 것은 유럽 각국에서 판매되는 마작 세트 대부분에는 현재도 압도적으로 상해마작을 전승한 매뉴얼이 첨부된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리치마작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는 일본 정부를 포함한 일본의 마작에 대한 애착은 실로 대단합니다. 대한민국의 이창호 사범이 등장하면서 갑자기 무너지기 시작한 과거 일본 바둑에 대한 자존심과 열정이 이제 마작으로 완전하게 전이된 느낌입니다. 이에 자극받은 중국 역시 서두에서 얘기한 대로 국표마작을 앞세워 맞불을 놓고 있는 형국입니다.
마작의 종주국인 중국에 감히 충고한다면 상황이 마작과 거의 비슷했던 바둑을 말 그대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바둑의 공식 영문명이 종주국인 중국의 한자 ‘기(棋, 중국 발음 치)’가 아닌 일본의 이체자인 ‘고(碁)’를 뜻하는 ‘Go’가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현실을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Go’가 구글에 의해 자연스럽게 ‘알파고(AlphaGo)’로 업데이트되는 현상을 마작 분야에서는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
제3자 입장에서 봤을 때 마치 자신들이 마작의 종주국인양 행세하는 일본의 태도가 좀 거슬리는 건 사실입니다. 일본의 리치마작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리치마작의 뿌리는 중국 마작에 있습니다. 리치마작에 대한 그들의 노력과 열정을 아무리 높이 산다고 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가뜩이나 복잡한 마작 용어를 지나치게 일본식 한자로 바꾸는 등 은근히 중국 마작을 폄훼하는 자세 역시 올바르지 않습니다.
리치마작에서 일본이 자랑하는 ‘리치’는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상해마작에서 이미 ‘입직(立直, lìzhí)’이라는 거의 같은 발음의 용어와 비슷한 개념이 존재합니다. 이에 대해 일본은 중국의 입직은 첫 순서에서만 할 수 있는 규칙이지만 자신들의 리치는 대국 중 아무 때나 선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창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일본의 리치에 대한 규칙이 북경을 중심으로 한 화북(華北, 화베이) 지방에서 존재했던 ‘로컬룰’에 이미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이에 관한 논쟁은 일단락된 바 있습니다.
다만 일본이 주장하는 대로 서비스 점수인 ‘도라’에 대한 부분은 어느 정도 독창적인 면이 있다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운에 의한 요소가 강해지고 부가 점수가 대폭 상승하면서 도박적인 성격이 확대됐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도라’가 가지를 쳐 ‘깡도라’, ‘뒷도라’, ‘적도라’ 등까지 도입된 것은 마작의 본질에서 너무 벗어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의 리치마작이 결국은 중국 마작의 변형판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점수 계산시 점(판)의 하위 단위인 분(分)과 같은 개념의 부(符) 사용, 특정한 조합에 기본점수 부여, 선(先)과 딜러(Dealer)에 해당하는 동가(東家)의 경우 2배 지불 및 수령 등 특히 점수 계산시의 규칙이 마작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상해마작을 빼닮았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일부의 의견이지만 리치마작 미국 기원설도 있습니다. 1945년 8월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이 일본에 주둔했을 당시 혹은 한국전쟁 기간에 일본에 파견된 일단의 장교들이미국 일부 지역에서 유행하는 리치, 도라, ‘치두이쯔(마작의 약의 하나)’ 등 새로운 약의 개념을 일본 마작계에 소개했다는 설이 그것입니다.
일본의 리치마작은 모든 마작 중에서 배우기가 가장 어려운 마작입니다. 익혀야 할 규칙도 많고 점수 계산도 복잡합니다. 특히 의식을 중요시하는 민족답게 리치마작 자체가 좀 번거로운 면도 있습니다.(특히 ‘후리텐’에 관련된 제약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치마작이 마작 중에서 가장 예술적인 마작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처음 배우는 마작이라기 보다는 마지막에 배우는 마작으로 어울립니다.
처음 배우는 마작은 역시 그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중국 마작이, 그 중에서도 상해마작이 제격입니다. 상해마작을 할 수 있다면 리치마작을 포함한 모든 마작을 배우는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상해마작은 아주 담백한 맛이 있는 마작입니다. 쉬우면서도 오묘한 깊이가 있는 마작, 그것이 바로 상해마작입니다.


마치며

제2강에서는 상해마작을 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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